경제/펀드

‘기업 삼키는 괴물’ 사모펀드

bthong 2007. 5. 20. 21:48
  • 전세계 M&A자금의 15% 돈되는 기업은 모두 표적
    연기금 등 풍부한 유동성 세계 경제지도까지 바꿔
  • 신지은 기자 ifyouare@chosun.com
    입력 : 2007.05.16 23:27
    • “돈과 정치 파워로 무장한 그들이 아비규환의 전쟁을 시작했다. 오직 ‘수익’이라는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업들을 닥치는 대로 덮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투자 철학을 ‘탐욕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5월1일)에서 사모펀드(PEF)를 가리켜 이렇게 묘사했다. 전 세계 산업계가 사모펀드에 의해 체스판의 장기처럼 재편되고 있는 것을 지칭한 것이다. 은행·투자은행(IB)을 대신해 사모펀드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제왕’으로 등극했다는 비유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14일, 사모펀드 서버러스가 크라이슬러를 전격 인수하자 세계 자동차 업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세계 사모펀드 순위 10위권에 드는 서버러스는 이미 자동차 렌털, 자동차 대출 금융회사 등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서버러스가 마음만 먹으면 자동차 종합그룹을 하나 완성시킬 수 있다. 게다가 추후 제3의 자동차 회사에 크라이슬러를 판다면 업계 순위가 근본적으로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돈 되는 기업은 무조건 산다=지금 세계의 M&A(기업 인수·합병) 열풍은 사모펀드가 주도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1~3월 이뤄진 M&A 계약(1조1300억달러) 중 사모펀드 자금(1660억달러)이 15%를 차지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 증가한 수치다. 이들은 호텔·정유·군수·패션, 심지어 피자 회사까지 인도·중국 등 국경을 마구 넘어 돈 될 만한 기업이라면 어디든 달라붙는다.


    • 블랙스톤과 사모펀드 1위 자리를 다투고 있는 KKR은 올해 들어서만 총 6건에 걸쳐 무려 2600억 달러 규모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한국의 외환보유액(3000억달러)에 필적하는 금액이다. 이 총탄을 갖고 KKR은 미국 텍사스 최대 에너지 기업인 TXU와 병원체인업체인 HCA, 신용카드 정보처리업체인 퍼스트데이타를 먹성 좋게 먹어치웠다.

      일본 전기메이커 산요는 지난해 골드만삭스 계열 사모펀드의 영향권에 들어갔고 국내에서도 지난해 오리온그룹의 바이더웨이가 CCMP펀드에 인수됐다.

      ◆실력자 영입해 영향력 강화=사모펀드의 놀라운 수익성은 월가의 내로라하는 투자은행들도 혀를 내두른다. 블랙스톤이 지난 3월 상장하면서 공개한 손익계산서에 따르면 770명 직원의 1인당 순익은 295만달러로,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보다 8배 이상 높다.

      사모펀드의 괴력은 미국의 각종 연·기금이나 대학자금에서 흘러 들어오는 풍부한 유동성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매수 대상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빌린 돈까지 보태 자금력을 눈덩이처럼 불린 뒤 먹잇감을 사냥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본을 유치하려면 실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사모펀드가 정·재계의 실력자들을 영입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이유다.

      KKR은 HSBC 전 회장 존 본드를 영입했고, 서버러스는 지난해 퇴임한 존 스노 전 재무장관을 이사회 의장에, 댄 퀘일 전 부통령을 홍보 담당 책임자로 앉혔다. 클린턴 2기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는 헤지펀드인 DE쇼에 영입됐고, 폴 오닐 전 재무장관도 2003년 블랙스톤에 들어갔다.

      ◆막강한 영향력에 견제 압력=국내의 토종 사모펀드들도 슬금슬금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보고펀드가 지난 3월에 MP3 제조업체 레인콤에 600억원을 투자했고 마르스2호(우리투자증권 계열)는 레이크 사이드 컨트리클럽 지분 47%를 매집했다. 이에 앞서 MBK파트너스는 HK저축은행과 한미캐피탈의 주인이 되기도 했다.

      현재 25개인 토종 펀드들이 굴리는 자금은 2조5000억원에 불과하지만 투자영역을 골프장, 외식업체 등 다양하게 넓혀 가며 활동 공간을 확장 중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사모펀드가 경제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장기적 투자보다는 단기간에 차익을 거두는 데만 신경 쓴다는 것.

      미국·유럽 정부는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막강해지자 이들에 대한 규제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기관이나 연기금 등이 사모펀드에 투자한 금액을 공표하게 하는 방안 등이다. G8 의장국인 독일도 이 문제를 주요 의제 중 하나로 선정해 회원국들과 논의하고 있다.

       

    • 키워드…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제한된 소수의 개인·기관 투자자들에게서 비공개로 자금을 모아 기업·부동산을 인수, 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차익을 올리는 펀드. 일반 투자자에게서 돈을 모으는 공모(公募·공개모집) 방식이 아니어서 거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