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

향일암

bthong 2007. 9. 17. 08:45

대한불교 조계종 제 19교구본사 화엄사 말사인 금오산 향일암은 남해 제일의 관음기도 도량으로서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이 그 이름을 부르면 음성을 듣고(觀音)서 중생을 구제하는 구원과 희망의 모성(母性)입니다.

또한 중생들에게 온갖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無畏心)을 베푼다는 뜻으로 시무외자(施無畏者)라고도 하며, 자비를 위주로 하므로 대비성자(大悲聖者)라 부르기도 합니다. 금오산 향일암에는 이러한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에 귀의하고자 하는 사부대중들의 기도소리가 1년 365일 전 도량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 공덕이 원만히 회향되기 위해서는 기도할 때의 마음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마음가짐의 첫째는 믿음입니다. 즉 이 기도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부처님의 가피가 분명히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깊이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참회하는 마음입니다. 평소 우리 자신의 잘못된 생활에 대한 반성을 기도와 더불어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참회하고 비우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변의 모든 이웃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중생이 나와 한 몸임을 깨닫고 그들 모두에게 평화와 안락이 깃들기를 바라며 누구에게도 원망이나 미움을 갖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기도에 임할 때 기도는 참다운 공덕을 쌓게 됩니다.

“아침에 관세음을 염하고, 저녁에 관세음을 염하며, 부처님 본래 마음자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사람이 고난을 떠나고, 고난이 몸을 떠나 온갖 재앙이 사라질 것입니다.” 금오산 향일암을 찾은 무한 인연공덕으로 신도님들의 하시는 일마다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향일암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산 7번지에 위치.
여수에서 돌산대교를 건너 1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죽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난 7번 군도를 따라가면 임포항에 다다른다.
그 임포항의 금오산에 향일함이 자리하고 있다. (061-644-4742)
 

(1)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광주 → 여수행 버스 → 여수/오동도 → 돌산도/향일암, 여수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111번
   시내버스(1일 10회운행, 1시간 소요)가 수시로 운행되고 있으며 여수 공용터미널에서는 1시간 간격으로 임포행 ( 향일암 :  
   1일  6회운행,  40분 소요 ) 직행 버스가 출발하고 있다.


(2)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1) 남해안 고속도로 → 광양 또는 순천 I.C → 여수 → 돌산대교 → 17 번 국도 → (16 km) → 죽포 → 7 번 국도 → (9 km) →
       임포 (돌산대교에서 25Km 정도)
   2) 곡성이나 보성 → 벌교 → 여수 → 순천 → 여수 → 돌산대교 → 돌산도
   3) 호남고속도로 → 서순천 I.C → 순천 → 여수 → 돌산대교 → 죽포 삼거리(좌회전) → 향일암 (17 번 국도와 7 번 국도 이용)


※ 향일암은 관람료 사찰입니다.

 

주변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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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오동도는 천혜의 미항, 여수시 수정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토끼 모양의 작은 섬이었으나 현재는

긴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고 여수역에서는 1.2㎞, 여수공항에서는 19.7㎞ 지점임


호남고속도로 또는 대전-진주 고속도로 순천IC(17번 국도)
여수여수역오동도
여수시내버스 이용 오동도 하차. 5분 간격 운행. 15분 소요
여수 기차역에서 걸어서 15~20분 이내

오동도 유래
멀리서 보면 지형의 생김새가 오동잎처럼 보이고 옛날에는 오동나무가 빽빽이 있어 오동도라 불리움. 한때는 이충무공이 이 섬에 대나무를 심게 한 후 대나무가 번성하자 죽도(竹島)라 불렀다 함

오동도의 전설
고려 공민왕때 스님 신돈은 전라도라는 전(全)자가 사람인(人)자 밑에 임금왕(王)자를 쓰고 있는데다 남쪽땅 오동도라는 곳에 서조인 봉황새가 드나들어 고려왕조를 맡을 인물이 전라도에서 나올 불길한 예감이 들어 봉황새의 출입을 막기 위해 오동도 오동나무를 베어 버린 전설이 있음.

 

멀고 먼 옛날 오동숲 우거진 오동도는 아리따운 한 여인과 어부가 살았는데 어느날 도적떼에 쫓기던 여인이 벼랑  창파에 몸을 던져 정조를 지키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돌아온 남편이 오동도 기슭에 정성껏 무덤을 지었는데 북풍  한설이 내리는 그해 겨울부터 하얀눈이 쌓여 무덤가에 동백꽃이 피어나고 푸른 정절을 상징하는 신이대가 돋아났다는 전설이 있음

 

 

  
전남 여수시 남산동 ~ 돌산읍

호남고속도로 순천IC(17번 국도)여수돌산대교
여수시내돌산도/여수역과 오동도에서는 101번, 시외버스터미 널에서는 111번 버스가 돌산대교·무술목·방죽포를 거쳐 향일암 아래의 임포마을까지 수시 운행

여수시 남산동과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사이에 놓여진 길이 450m, 폭 11.7m, 높이 62m의 사장교이다.
1984년 12월 15일 준공된 이 대교는 주변에 다도해와 여수항이 바라보이는 돌산공원과 횟집, 상가, 모형 거북선이
있고, 한려해상국립공원 오동도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일대를 운항하는 유람선이 있다.

임포, 향일암, 방죽포 해수욕장, 무술목유원지, 전라남도 수산종합관 등 많은 관광 자원을 연결하는 국도 17호선인
이곳은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이다.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4

여수시외버스터미널이나 시내에서 돌산방향 시내버스
106, 106-1,, 110, 107번이 운행되며, 소요시간(50분)

은적암은 중봉산 중턱에 있으며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남면 금오도에 송광사를 짓고, 순천 선암사를 오가
면서 중간 휴식처로 세웠다고 하는데, 암자 뒤편에 있는 바위가 병풍을 두른 것 같으며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계곡을 흐르는 물이 밤이면 큰 물소리로 들릴 정도로 조용하여 은적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숲 속에 있는 작은 암자이기는 하나 절 안에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관명루ㆍ칠성각ㆍ
요사체가 있다.

은적암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나온 상량문에 따르면 1656년 건물을 다시 지었고, 1776년 11월에 부서진 재목을 다시
모아 이듬해인 1777년 1월 24일 상량을 했다. 이 불사에 참여한 사람들로 본진사도주 수군절제사 최도민, 전 별장
옥필흥, 박세보 등이 기록에 나타나 돌산 방답진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은적암에는 1656년 중창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목불이 있다.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
TEL : 061) 685-5633
여수시입구(국도17호선)석창(여수국가산단입구)
중흥삼거리(우회전)흥국사
여수에서 시내버스 52번 이용,
흥국사 하차/ 40분 간격 운행/1시간 소요
여수국가산단(2km), 선소(7km), 만성리 해수욕장(12km)

흥국사는 전라도순천부영취산흥국사사적(全羅道順天府靈鷲山興國寺事蹟 : 이후 흥국사 사적기라 칭함)에 의하면 1195년 보조국사지눌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져 온다. 이 외에 다른 기록에서 약간의 연대 차이는 있으나 모두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처음에 사찰의 위치를 잡을 때 노스님이 나타나 국사를 금성대로 안내해 영취산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내려가면 절묘하고 빼어난터가 있는데, 하늘이 아끼고 땅이 보호하는 불법이 크게 일어나는 도량이 될 것이다. 이곳에 큰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흥국사라고 하라. 이절이 잘되면 나라도 잘되고 나라가 잘되면 이절도 잘될 것이다.” 라고 했다고 흥국사사적기에 전한다. 흥국이라는 이름 역시 이와 연관되어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보조국사가 흥국사에서 송광사로 옮긴 후 흥국사의 사세는 급격히 기울었다고하며 100여년 가까이 토굴과 같았다고 하며, 이후 원나라 침략 때 모두 불타고 사찰은 폐사가 됐다고 한다.

    

이후 1560년 법수대사가 학준, 신잠, 수인, 양희, 영두 등과 더불어 흥국사를 재건했는데, 이때 법당과 전각을 복원하고 원정과 선방을 건립해 가람을 중건했다고 한다. 또한 임진왜란과 더불어 이곳 흥국사에서 의승수군 400명이 조직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법수대사가 건립한 건물들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에 모두 불타 없어졌고, 흥국사는 다시 폐허가 되어야만 했다. 이후 1624년 계특선사가 가람을 삼중창하는 역사를 진행했다. 가을에 법당을 중건하고 도반인 희, 익, 언과 더불어 모든 선방 및 요사들을 재건했으며, 수시로 모든 당우와 범종을 주조했다 한다. 또한 1633년 관음전을 건립했고, 1639년에는 홍교를 만들었으며, 1643년에는 첨성각, 1645년에는 정문, 1646년에는 봉황루를 건립해 사찰의 면모를 모두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1690년 또 다시 대웅전을 중건하는 공사를 하게 된다. 이때 중건을 담당하신 분은 통일대사로 기존의 대웅전이 낮고 좁기 때문에 더 넓고 큰 대웅전이 요청되어 중건이 진행되었다. 현재의 대웅전은 이 당시에 건립된 것이며, 기존의 대웅전 재목으로는 현대웅전 뒤에 있는 팔상전을 만들었다. 1691년 이러한 모든 역사적 사실을 전라도순천부영취산 흥국사사적(全羅道順天府靈鷲山興國寺事蹟)을 목판으로 찬술했다. 또 1703년에는 유명조선국전라도순천영취산 흥국사중수사적비(有明朝鮮國全羅道順天靈鷲山興國寺重修事蹟碑)를 천왕문 밖에 건립해 세워 두었다.
1759년에는 성도암에서 현재 보물 1331호 지정되어 있는 흥국사 괘불이 만들어 졌다. 이후 개개 건물 및 탱화는 수차례 보수 및 수리되어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으며, 계속된 불사에 의해 혹은 예전과 모습이 달라지기도 하며 혹은 새롭게 조성하기도 해 현재의 흥국사를 이루고 있다.

 

 

 

 
전남 여수시 봉산동 936
061) 642-6333
호남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의 경계인 순천 I.C.여수방면 4차선도로로 36km 달리면 여수시외버스터미널터미널 지나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인 국동어항단지 방면 길로 진입서교
로타리(우회전)(600m)벅수골
여수역(5분 간격), 또는 시외버스터미널(20분 간격)에서 시내버스 이용 벅수골 하차, 도보로 20분 소요, 승용차 한산사까지
진입가능

절의 창건은 1830년(순조 30)에 작성된 『한산사중창서』에 의하면 보조국사 지눌(1158 ~ 1210)이 세웠다 한다. 이
중창문이 사찰의 역사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구봉산은 우리나라 여러 산 가운데 가장 영험한 곳으로 수목이 울창한데, 이러한 명산에 사찰이 없음을 안타까워 한 보조국사가 이에 절을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내용이 어디에 근거하였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한편 절의 사정을 전하는 최근 기록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1195년(고려 명종 25)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것으로 적고 있다.

창건 이후 근대까지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거의 없다. 다만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 9월 이후 당시 전라좌수영
산하의 모든 수군들이 흥국사를 본영으로 해서 전쟁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한산사도 수군과 의승군(義僧軍)의 주둔
처로 활용되면서 법등을 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호국사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이다.
지금 절에 전하는 범종의 조성 시기가 18세기 말엽으로 추정되므로 당시 절의 연혁에 대한 하나의 참고가 된다.

    

현대에 들어서는 1931년 법당 등을 고쳐지었고, 1936년에는 보광전을 건립했다. 1946년에는 칠성각을 건립하였고,
보광전에 관음보살을 봉안하였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우측면의 명문에 의하면 지금의 한산사는 1950년 이후 부터 다시 불사를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64년에는 범종각을 새로 지었고, 요사를 세웠다. 1982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1992년에는 보광전을 해체하여 대웅전으로 고쳐 짓고 절 입구 도로를 확장하였다. 1996년에는 칠성각과 용왕각을 복원하였고, 약사전을 신축할 예정이다. 현재는 대웅전, 칠성각, 용왕각, 요사 2동, 범종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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