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첫날 아침, 잠에서 깼습니다. 잠에서 깼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비몽사몽입니다. 눈도 잠자던 그대로 감고 있습니다. 이때 불현듯,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칩니다. 소식(小食). 마치 하느님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소식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꽉 박혀서 떠날 생각을 안 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얼마 전부터 고민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올 한해 <맛있는 인생> 블로그 방향을 어떻게 잡을까 하는 겁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방송국에서 매년 하는 연중 캠페인 같은 거구요. 보통으로 말하면 올해 지향하고자 하는 블로그 성격입니다. 다시 말하면 블로그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주장입니다.
듣기 싫게 무슨 잔소리냐? 맛집이나 음식소개 블로그에서 그저 맛있는 거나 많이 올려주면 장땡이지! 말 하시는 분, 또는 먹을거리를 밝혀서 찾아오시는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왕 음식문화발전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고 마음먹은 것, 식도락을 추구하기보다 건강까지 생각하는 길을 가고자 합니다.
맛객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미식가’입니다. 맛있는 맛만 탐닉하는 짝퉁 미식가는 단순하고 순수한 미각을 지닌 어린이들의 입보다 아래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진정한 미식가는 맛만 탐하지는 않습니다. 음식이 지니는 문화와 그것을 만드는 요리사의 정신까지 음미하겠지요.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준 음식을 먹었을 때에 어디다가 인사하나요? 아마 열이면 열, 카운터에서 가만히 앉아 돈이나 받는 주인장이나 종업원에게 “잘먹었습니다” 인사합니다.
(요리사라는 직업을 천대 시 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음식문화를 터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교육부총리도 요리사에게 존경을 표하고 스스럼없이 나의 친구! 라고 말하는 오늘날입니다)
미식가라면 주방에 있는 요리사를 찾아 마음에서 우러난 인사를 할 것입니다. 아니면 당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참 행복했다고 메모라도 테이블에 남길 겁니다. 음식을 혀로 먹지 않고 머리로, 가슴으로, 정서적인 느낌으로 음미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음식은 만드는 이와 먹는 이 간에 교감이니까요.
그런 이라면 어떠한 음식에서 인생의 맛까지 깨닫게 되겠지요. 미식가란 말 속에 그런 의미까지 담고서 불러 준다면 참 행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맛객은 그런 찬사를 들을만한 자격도 안되구요. 내공도 부족합니다. 겨우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정도 할 정도입니다.
그 고민의 흔적이 소식으로 나타났나 봅니다. 우습죠? 음식을 다루는 블로그에서 소식을 올해 화두로 삼는다니 말이죠. 맛있는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먹고 싶은 마음 굴뚝같게 만드는 그 블로거가 소식을 하자고 까분 다네요. 글쎄!
맛객이 그런 생각을 가질 정도로 현재 한국인의 비만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네들과 달리 농경문화에서 비롯된 채식문화 민족임을 감안하면 비만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짐작하건데 아시아 국가에선 가장 심각한 지경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비만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나 젊은 층의 입맛이 서구화에 점령당하면서 비만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비만이 질병으로 분류되면서 심각성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육체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기피증 등 정서발달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게 비만입니다. 1월 3일 sbs 뉴스 보도를 보면 살이 찌게 되면 남자는 여성화가 여성은 남성화가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성호르몬의 양이 뒤바뀌기 때문입니다.
(영양의 공급은 늘어만 가는데 활동성은 점차 떨어지고 있는 현대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비만환자는 늘 수밖에 없는데요. 이는 음식의 문제도 있지만 예전에 비해 줄어든 활동량이 이유이기도 합니다. 방과 후 농사일을 돕거나 친구들과 뛰어놀던 그 시절의 어린이에 비하면 요즘 어린이는 한마디로 우리에 갇힌 돼지나 다를 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표현이 지나친 감 없지 않으나 경각심을 갖자는 뜻입니다. 학교에서 하교 후 바로 이어지는 학원생활이 마치 우리에 갇혀 지내는 거나 별 반, 다를 바 없다는 말씀입니다.
또 놀 때에도 컴퓨터 앞에 꼼짝 않고 앉아서 몇 시간씩 컴퓨터게임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방학시즌에 동네 피시방에 가 보셨나요? 어린 초등학생과 청소년들이 매캐한 담배연기 가득한 곳에서 컴퓨터게임에 푹 빠져있는 장면을 목격 하실 겁니다. 식사는 대충 컵라면 같은 걸로 때우면서 말이죠. 이러다 보니 체격은 커졌는데 체력은 약해지는 게 요즘 아이들입니다. 이처럼 줄어든 활동량에 비해 영양공급은 예전보다 월등하게 많아졌죠. 비만화 되어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요즘은 어린이 성인병 환자도 급증하는 추세라니 참 걱정입니다.
우리 속담에 ‘미운자식(놈) 떡 하나 더 준다’ 는 말이 있죠. 밉다고 미워하지 말고 관심과 애정을 주거라 이런 뜻일 겁니다. 어쨌든 소식이 건강의 화두로 떠 오른 요즘에는 속담도 바뀌어야 되겠습니다. 진정 관심과 애정을 주고자 한다면 앞으로는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미운자식 고기 한 점 덜 준다’
빨리 자라는 대나무는 속이 비었다
소식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이, 이번엔 또 다른 생각이 침입해 옵니다.
“배불리 잘 먹었습니다”
바로 이 말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을 때 절로 나오는 말입니다. 참 따뜻하고 좋은 말이죠? 대접해주는 이의 심성을 알 수 있고, 또 대접 받는 이의 감사하는 마음이 “배불리 잘 먹었습니다” 말 속에 농축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요. 비만인구가 많아지는 이 시대에도, 배불리 잘 먹었다는 인사가 나오게끔 차리는 음식문화 과연 바람직할까요? 아직 못 먹고 못살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우리 부모님들 세대는 음식은 일단 푸짐하게 모자람이 없도록 차려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남더라도 손 크게 장만하십니다. 예전에는 그게 정이고 미덕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양의 과잉이 문제시 되는 요즘, 배부르게 잘 먹었다는 인사가 나올 정도의 음식 장만은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가정에서든 음식점에서든 “적당히 잘 먹었습니다” 이런 인사가 나올 수 있는 식단이 필요할 때입니다.
(길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일본인, 비만이 별로 없고 체격도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수하는 국민입니다. 체격이 서구화 되고 비만인이 늘어만 가는 우리이기에 식문화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 우리보다 체격이 작은 동남아인을 보고 무시하거나 우월감 가져본 적 있나요? 아니면 체격이 큰 서양인을 보고 움츠려든 적 있나요? 일본에 가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우리보다 작은 체구가 참 많다는 겁니다. 물론 비만인도 보기 드물었구요.
그런 민족이 스모를 할 정도로 큰 체격이 되려면 타고나기도 해야겠지만 참 먹기도 많이 먹어야겠구나 생각 들었습니다. 그들의 체격이 작은 건 식 문화가 육류보다는 해산물이나 채소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해산물이나 채소를 즐기던 시기에는 비만이 별로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또 하나 느낀 점이라면 패스트푸드점이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시골 조그만 소읍까지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무방비 적으로 노출된 게 패스트푸드입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체격이 좋아질지는 몰라도 그것이 건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경계하는 겁니다. 비만, 이제 더 이상 가정의 문제로만 덮어둘 수는 없습니다. 국민의 건강뿐만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국가가 나서서 비만관리 대책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비만관리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
말을 하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네요. 소식! 무조건 덜 먹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식단의 변화를 통해서 음식을 균형 있게 골고루 섭취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비만의 원인은 많이 먹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마른 체형의 사람도 많이 먹는 사람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살찌지 않는 이유는 편식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편식은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비만으로 이어집니다. 곧 ‘편식=비만’이라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편식 중에서도 가장 안 좋은 편식은 지방질이 많은 것 위주로 먹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식습관이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맛객 블로그에 소개됐던 음식들을 살펴봤습니다. 초밥, 생선회, 참치, 홍어회.찜, 쇠고기무국, 피조개, 갯장어, 전복회덮밥, 보리비빔밥, 대게, 냉면, 순두부, 산채나물, 복국, 굴밥, 물회, 칼국수, 해장국, 오뎅, 과메기, 돼지갈비, 순대, 대구탕, 김치찌개, 꼬막 등의 음식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재료와 양념으로, 원재료의 맛을 느끼기 힘든 음식보다는 담백한 맛을 추구한 듯합니다. 또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밭에서 나는 것보다 들이나 산에서 나는 나물류를 더 선호했습니다. 계절감각 없는 가공식품은 멀리 했습니다.
(엄나무 순)
(새조개 회)
(순두부 외에 아무 재료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초밥)
맛객이 선호하는 담백한 맛이나 해산물, 나물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공미가 절제된 자연의 맛에 가깝다는 거죠. 원래부터 이런 맛을 좋아했던 측면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음식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많은 양념이 들어가거나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음식은, 합성조미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뿐 아니라 재료의 신선도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최소한의 양념과 한두 가지 재료로 만든 음식을 찾다보니, 담백한 맛에다 생식이 가능한 나물이나 해산물에 눈을 돌린 듯합니다.
그래도 가끔 고기도 먹고, 양념 범벅 된 음식도 즐깁니다. 또 맛있고 화려한 음식만 찾는 게 아니고, 맛없거나 소박한 음식을 즐기기도 하구요. 이렇듯 음식에 있어서도 중용은 필요할 듯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 중엔 먹을 땐 즐겁지만 먹고 나면 속이 거북한 음식도 참 많습니다. 몸이 원하는 음식이라기보다 입이 원하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보기에는 시골 똥개처럼 그저 그런데 먹고 나면 속이 편한 음식도 있습니다. 우리 몸이 원하는 음식입니다. 그런 음식 중에 으뜸은 우거지된장국입니다. 왕회장이 가장 즐겨먹었다는 우거지 된장국은 다음날 아침, 기분까지 상쾌하게 해 줍니다.
맛객이 말하는 소식의 의미는 그런 겁니다. 계절감각 없는 음식으로 입만 생각하지 말고 몸을 생각해서 제철음식을 먹는 것, 한 마디로 잘(알고) 먹자! 제대로 먹자!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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