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유채꽃 필 무렵, 혼저옵서예

bthong 2008. 3. 23. 21:15
따사롭고 인심좋은 대평리 너른 들은 용왕 아드님 공부하던 전설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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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의 달력에는 으레 노란색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제주도의 풍경 사진이 등장한다. 약간 식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나라의 봄을 대표하는 이미지라는 말도 된다. 하지만 직접 보는 제주의 봄은 달력 사진과는 비교가 안 된다.

지난 6일 이맘때 제주 봄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는 대평리를 찾았다. 검고 푸르게 넘실대는 바다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소나무로 뒤덮인 아찔한 절벽이다.

그런가 하면 저 멀리에는 눈덮인 한라산이 희고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여기에 흐드러진 유채꽃이 더해져 그야말로 고흐의 그림 한 폭을 자연에 옮겨 놓은 듯하다. 봄바람에 실려날아온 바닷내음과 어우러진 이국적인 꽃ㆍ나무 향기도 사방에 가득하다.

대평리 앞바다에서 전통낚시 뗏목인 '테우'에 몸을 실었다. 따뜻한 제주도지만 바닷바람은 여전히 차고 매섭다.

약간만 몸을 움직여도 물이 들이닥쳐 옷이 젖기 십상이다. 그러나 마냥 얌전히 앉아만 있기엔 섬의 매력이 너무 크다.

말린 새우를 미끼로 낚싯대를 드리운 채 제법 강태공 티를 내며 기다리기를 10여 분, 본격적인 '입질'이 시작된다.

알록달록 형광색의 몸을 빛내는 어랭이(노래미)를 시작으로 쥐치 등 다양한 물고기가 잡힌다.

연거푸 "월척!"을 외치자 "오늘은 흉년이다. 운 좋은 날은 돔도 잡을 수 있다"는 말이 되돌아온다.

낚시를 다 했다면 뭍에서 '몰질 트레킹'에 나설 차례다. 바다에서 바라보던 절벽 가까이로 다가가니 또 다른 기대에 설렌다. '몰질'은 '말(馬)길'의 제주 방언이다. 원나라 지배를 받던 고려시대, 원나라 상인들이 말을 타고 다니던 길이다.

몰질 트레킹은 산등성이까지 이어진다. 정상까지 가는 데는 30분이 조금 넘게 걸린다. 가파른 바위길이지만 이곳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듯 아무렇지 않게 오른다.

천년 전 원나라인이 고려를 지배할 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 길. 아름다운 경치가 슬픈 사연과 어우러져 애수가 느껴진다.

정상에 오르면 조금 전까지 가파른 길을 올라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편평한 들이 펼쳐진다.

몰질 꼭대기에는 소나무가 울창하다. 소나무들 틈에 서서 한눈에 해안가를 담을 수 있으니 열심히 올라온 보람이 있다.

대평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도 사람들은 대평리를 '용왕난드르'라고 부른다. '난'은 '너른', '드르'는 '들'의 제주 방언이다. 넓은 들인 셈인데, '용왕'은 대체 왜 붙게 된 것일까.

용왕의 아들이 사람으로 둔갑하고 대평리를 찾아와 유명한 선생 밑에서 글을 배웠다. 글공부를 마친 아들이 선생에게 소원을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하자 선생의 대답은 "안덕 계곡의 물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글을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계곡 물소리를 줄이기 위해 용왕 아드님이 마을 앞에 군산오름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이를 기리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마을 이름 앞에 '용왕'을 붙였다.

전설이면 으레 등장하는 '피와 칼, 복수'가 아닌 '글공부와 보답'의 설화를 가진 마을이다.

대평리 앞바다에서 경치를 바라보면 따뜻하고 상쾌한 모습에 마음도 누그러진다. 그래서일까. 마을을 찾은 여행자에게 이장이 직접 나서서 가이드가 돼 줄 만큼 주민 인심도 이곳 풍광을 닮아 넉넉하다.

대평리는 얼마 전 농촌전통체험마을로 지정됐다. 아직 관광객에게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군산오름과 몰질, 테우낚시 등 제주도 토박이들의 생활과 자연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

인근 제주신라호텔도 가족단위 주말여행객이 늘어남에 따라 봄철 토속제주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달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나섰다.

체험행사에 참여한 한 가족은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체험할 수 없는 이색경험을 하면서 제주의 봄까지 만끽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얘기했다.

[제주 대평리= 박소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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