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외

보스니아 모스타르: 증오와 전쟁에서 화해와 평화로 가는 다리

bthong 2013. 10. 11. 21:01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였으며,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생생한 모스타르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는다.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국가명도 어렵다고 하겠다. 그만큼 이나라는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있는 나라이다.  

 점심메뉴는 케밥인데 이렇게 생겻다.고기는 불에 직접 구웠는지 불냄새가 났었고 올리브유에 볶은밥과 감자를

곁드려 주는데 느끼한 맛이 있었지만 먹을만 했다. 하긴 돌도 맛있다고 먹을 판인데.....

 

 

 

 

  돌길이 참매력적으로 깔려있는 구시가지

 

 

 

 

 이슬람교도들이 사는 동네이고 오스만 트르크의 오랜 지배를 받았던 곳이라  

그런지 상품의 문양이나 모습이 아랍쪽 문양을 하고있었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을 사이에 두고 이슬람 지구와 기독교 지구로 나뉜다.

스타리 모스트는 이슬람 지구와 기독교 지구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다리이다.

 

 

 

 1556년 이스탄불의 유명한 건축가 미마르 하이루틴 Mimar Hayruddin이 만든 터키풍 아치형 석조다리이다.

길이 30m, 높이 25m, 넓이 4m인 스타리 모스트는 오스만 투르크가 발칸에 남긴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는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같은 슬라브족이 살고 있는 모스타르에서 네레트바강을 경계로 가톨릭과 이슬람으로 종교, 문화와 생활이 분리되어있다.

 

 

 

 

 내전당시 민족살상의 산물인 탄피를 이용하여 각종 소품을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다.

두번의 내전을 격은이곳은 2개의 종교지역으로 갈려서 서로다른 문화권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한번은 유고연방에서 독립하면서 내전을 격었고 2번째는 다리를 하나 사이애두고 크로아티아계와

보스니아계의 내전이엇다. 다리하나를 사이에두고 수백년을 살아온이들은 어느날 서로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살상을 하였다. 자신의 부모를 누가 죽었고 누가 무슨짖을 했는지를 다알고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사람에 대한 감정이 수그러들수 있을까. 어찌보면 풀리지 않는 앙금을 않고 살아가는

그들은 또하나의 불씨가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동네다. 

 

  

 바닥의 돌을 이렇게 이쁘게 깔아놓았다. 이런걸 파괴하고 종족을 살상하는 전쟁을 격었으니... 

 

 

 

 

 모스타르 다리를 건너간다. 이다리가 종교적인 생활 문화를 하나로 이어주는 역활을 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지도자들의 호전적인 발상이 살육의 현장으로 내몰았다. 이웃 주민들끼리 살상을 하도록........

 

 

 

 모스타르를 가로 질러흐르는  네레트바강. 강물은 맑고 깨끗했고 수심은 무척 깊게 보였다.

 

 

 

 

 수영복을 입은 저남자는 모스타르 다리위에서 뛰어 내리며 돈을 받는 사람이고 저여자는 삐끼 같았다.

 

 

 

 

 모스타르 다리위에서 바라본 네레트바강과 차량이 통행하는 다리

 

 

 

 

 다리 위에선 서너명이 난간에 서서 저희들 끼리 뛰어내린다, 만다 하면서 떠들며 호객을 한다.

25유로를 주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어 내린다고 하지만 그렇게 주는사람이 없었는지 한참동안 떠들고 다닌다.

 

 

 

 

 

 

 

 

 

 이슬람교쪽이나 카톨릭방향이나 이다리를 보러온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이스람 복장을 한 식당종업원

 

 

 

 

 

 

 

 

 

 

 

 

 

 

 

 

 

 

 

  카톨릭 지역을 보고 오니 다리난간의 젊은놈이 뛰어내렸다.

알고보니 4명이 뛰어내리는게 아니고 3명은 바람잡이 1놈은 행동책이다.

이나라는 아직은 많이 다듬어야 할것 같다. 우리같으면 이놈들은 벌써 경찰서에 몇번이나 잡혀 갔을건데.....

 

 

 

 

 모스타르 다리가 폭파되기전의 모습과 복구하는 사진을 찍은걸 팔고있었다.

 

 

 

 

 

 

 

 

 

 

 다리는 2005년에 복구하고 파손 되지않은 다리의 지주는 16세기 것이라 색갈이 다르다.

 

 

 

 

 

 

 

 

 

 

 

 

 

 

 

 

 

 

 

 

 

 

 

 

 

 

 

 

 

 

 

 

 

 전쟁전 호텔 건물이었으나 전쟁으로 푀괴된후 복구를 않고 이렇게 있었다.

이지역은 모두가 문화유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복구는 우리같이 쉽게 할수있는게 아니고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방법과 형식으로 하기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든다고 한다.

해서 어지간하면 개인은 복구를 않고 다른곳에 건물을 짖거나 그냥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가장 치열했던 내전 지역이라 이렇게 건물 외벽엔 총탄자욱이 많이 남아있다.

종전된지 벌써 18년이란 세월이 흘럿건만 아직도 이들은 끝나지않은 전쟁속에서 생활을 하고있었다. 

 

 

 

 

 이런 건물을 보면서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에 대해 많은걸 생각하게 한다.

 

 

 

 

  네레트바강과 스타리 모스트와 함께 모스타르 시내

원래 하나였던 이들을 갈라 놓았던 모스타르 다리가 지금은 다시 이들을 하나로 묶어놓았다.

 

 

 

 집시. 다떨어진 신발을 신고 뙤약볕에 앉아 지나가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사람도 젊었을때 티토 대통령 시절엔 세계 최강국의 국민으로 자부심을 갖고 살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떠돌이 집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한다.  

 

 

 

 

 

 

 

 

 모스타르 다리를 보고 이슬람교 거주지 에서 카톨릭교 거주지 쪽으로 넘어왔다.

여긴 이슬람교들의 거주지하곤 다른 모습 이었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어느 한쪽만 피해를 입는게 아니고 양쪽다 피해를 입을수밖에 없다.

 

 

 

 

 

 

 

 

 

 카톨릭계 거주지역의 아파트

 

 

 

 

이제 모스타르 다리를 보고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로 간다.

사라예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 이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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