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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스펙을 안 본다고?… 그렇다고 원하는 인재 뽑을 수 있겠나?

bthong 2013. 11. 23. 07:13

 

창의적 인재 뽑는다고? - 공기업의 대부분 업무… 가장 중요한 덕목이 창의성이라 할 수 있나
20년 준비한 학력·스펙 - 취업 준비생들의 지식·성실성·실행력이 가장 잘 반영된 자료
이제 와서 스펙 죄악시 - 우리 사회가 젊은이에게 집단 사기치는 게 아닐까 걱정해 본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음식이  매울 때 어린아이들은 음식 속에서 눈에 보이는 고추를 찾아서 덜어내려고 한다. 이 아이가 음식에서 매운맛을 없애는 방법으로 설탕을 넣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요즘 우리 사회의 기업 채용 과정을 보면, 우리 사회는 고추를 덜어내는 방법만 아는, 딱 그런 어린아이의 수준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의 기업 채용 슬로건은 '스펙 파괴를 통한 창의적인 인재 발굴'이다. 학벌, 학점, 영어 실력과 같은 객관적인 지표를 초월하여 창의성을 가장 중시해 신입 사원을 채용한다는 말이다. 일부 회사는 이력서에서 학력, 학점, 각종 시험 성적을 적는 칸을 없애기까지 한다.

문제는 과연 그런 방법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뽑을 수 있을까이다. 첫 번째 의문은 한 기업의 전체 직원 중에 과연 창의적인 인재가 몇 명 정도면 적당한가이다. 일반적으로 창의적인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과 생각이나 행동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러기에 다소 사회성이나 조직성에서 떨어질 수 있고, 단순한 일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성향이 있을 수 있다.

기업채용 일러스트

어느 기업이 이런 창의적인 사람으로만 채워진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그 기업이 영화, 만화, 문학,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과 같이 그 무엇보다도 창의성이 중요한 사업을 한다면 큰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런 창의적인 인재를 가장 창의적인 방법으로 선발한다고 연일 언론에 나오는 회사들은 웃기게도 전기를 공급하고, 국가 통신망을 관리하고, 기간시설을 건설하는 공기업들이다. 이런 기업들의 업무에 창의성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 대부분의 업무에서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일까?

두 번째 의문은 채용 기준에서 금기시되는 그러한 스펙들을 없애거나 무시하면 기업이 원하는 진정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가이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간에 현재 대부분의 젊은이는 더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해, 더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더 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는 예비 취업자들에게 지난 20여년 동안 자신이 가장 많은 공을 들여온 자료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학력, 학점, 스펙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지적 능력, 성실도, 사회적 요구와 규범을 따르는 순응성, 목표지향적 실행 능력이 잘 반영되어 있는 자료들이다. 바로 그런 능력과 특성이야말로 대부분의 기업이 대부분의 사원에게 요구하는 바이고, 이력서나 몇 분, 몇 시간, 며칠 동안의 면접에서 보여지는 어떤 다른 자료보다도 그런 스펙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렇게 중요한 자료들을 용도 폐기해버리는 것은, 고추를 덜어내는 아이들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정보를 없애면 그 정보가 일으키는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는 논리에 기반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은, 어차피 남은 정보로 신입사원을 선발해야 한다는 현실적 한계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의 이력서에서 학력, 학점, 각종 스펙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그런데 그 남은 정보가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그것에 근거해서 채용 여부가 결정된다. 여기서 바로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증대 원리(augment principle)'가 작동한다. 주어진 정보의 양이 줄어들면 남아 있는 정보가 판단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다. 요즘은 취업을 위해서 성형수술을 하고 외모에까지 너무 많은 투자를 하는 세태를 걱정한다. 그런데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력서에서 대부분의 정보가 빠져나가면서 더욱 중요해지게 된 면접에 남아 있는, 그래서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진 자료가 바로 외모라는 사실에 그 답이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어떤 정보의 폐해를 줄이는 방법으로 그 정보를 없애는 방법은 남겨질 자료가 매우 유용할 때 효과적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반대로 제공되는 정보를 늘리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지면 각 정보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절감원리(discounting principle)'를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여년을 준비해 온 자료를 결정적인 순간에는 마치 죄악시하며 폐기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집단 사기를 치는 것은 아닐까? 이력서에 사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지우라면서 성형수술은 왜 하느냐고 물어보는 우리 사회는 집단 치매에 걸린 걸까.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2/20131122019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