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보

가을 전어

bthong 2014. 9. 4. 17:29

남해안이 고향인 분들, 올 추석에는 ‘식도락적 행운’을 맞으셨습니다. 특히 전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대박’입니다. 가을 전어가 제대로 맛이 들었습니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습니다만 추석을 전후로 전어가 제철의 한복판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남해안의 유명 전어 산지 다섯 곳을 소개합니다.

자연산 전어, 어떻게 구분할까
전어 양식산과 자연산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꼬리를 보는 것이다. 깊은 바다에 사는 자연산은 꼬리가 노란빛이고 빗자루처럼 거칠다. 반면 양식장에 갇혀 사는 양식산은 수면 가까운 곳에 지내기 때문에 태양빛을 많이 받아 검은색을 띠며 둥글게 잘 정리돼 있다... 더보기+

통째 먹는 전어 - 뼈회(일명 세꼬시)가 버거웠다고? ‘통마리’에 비하면 약과다. 전어 대가리와 내장만 제거한 다음 통째로 씹어 먹는, 뼈회 중에서도 ‘하드코어’ 스타일의 뼈회다.
경남 사천에서 어부들이 즐겨 먹던 방식으로 사천에서는 여전히 이렇게 전어를 즐기는 이가 많다고 한다.

이틀에 걸쳐 255㎞를 달려 전어로 유명하다는 부산 명지시장, 경남 진해, 사천 대포, 전남 보성 율포, 광양 망덕포구를 찾아가 그곳의 전어를 맛봤다. '전어가 거기서 거기지'라며 출발했지만, 큰 착각이었다. 전어의 맛도, 먹는 방식도 어쩌면 그렇게 지역마다 다른지. 한국, 작지만 풍성한 맛의 땅임을 새삼 확인했다.

지역 따라 너무 다른 '가을의 맛'

전어 맛도 모양도 다르다

전어를 먹은 경력이 10여 년에 불과한 서울 등 대도시와 달리
오래전부터 전어를 먹어온 지역답게 먹는 방식에서도 내공이 빛났다.

남해 전어는 배가 나오고 통통한 편으로, 길고 날렵한 모양의 서해 전어와 구분된다. 이번에 둘러보니 남해 전어도 산지마다 조금씩 차이가 났다. 부산과 진해 등 경남 남해에서 잡히는 전어는 등이 푸른빛을 띠었다. 하지만 전남으로 갈수록 푸른빛이 옅어지면서 전체적으로 은색에 금빛이 군데군데 돌았다. 보성 율포 전어는 회로 썰면 뽀얗게 흰빛이 날 정도로 기름이 많고 살이 부드러운 반면 부산·진해, 사천 대포 전어는 상대적으로 기름이 적고 살이 단단했다.

회 써는 법도 다르다

육질이 다르다 보니 회 뜨는 모양도 차이가 났다. 부드러운 보성 율포 전어는 회를 약간 두껍게 썰어서 씹는 맛이 살아나도록 한다. 반면 살이 단단한 진해·부산·사천 전어는 보성보다 훨씬 얇게 회를 썰어냈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에 있는 광양 망덕포구는 전어 육질도 보성과 진해·부산·사천의 중간쯤이고 회도 중간 두께로 썰었다. 자기 지역 전어가 어떤 맛이고, 어떻게 썰어야 최고의 맛을 내는지가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된 결과다.

먹는 법도 다르다

전어를 먹은 경력이 10여 년에 불과한 서울 등 대도시와 달리 오래전부터 전어를 먹어온 지역답게 먹는 방식에서도 내공이 빛났다. 가장 독특하고 강한 '포스'를 발휘하는 곳은 사천 대포였다. 이곳 어부들이 즐겨 먹는다는 '통마리'는 전어 대가리와 내장만 제거한 몸통을 통째로 집어 들고 이로 뜯어 먹는다. 부산 명지와 진해에서는 전어 뼈회(일명 세꼬시)를 뜰 때 동전처럼 동그랗고 도톰하게 뜨기도 한다. 전어(錢魚)가 돈 전(錢)자를 쓴다는 걸 감안하면 무척 어울리는 방식이다. 보성 율포에서는 전어회에 참깨를 듬뿍 뿌려 낸다. 참깨가 빠지지 않는 전라도 요리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양하고 풍성한 맛을 즐기는 남도.
전어회를 담을 때도 봉긋하게 접시에 올려서 같은 양이라도 훨씬 많아 보인다.

담는 법도 다르다

보성에서는 전어회와 회무침, 구이를 합쳐 '전어 코스'라는 이름으로 판다. 다양하고 풍성한 맛을 즐기는 남도답다. 전어회를 담을 때도 봉긋하게 접시에 올려서 같은 양이라도 훨씬 많아 보인다. 경상도에는 이런 아기자기함은 없다. 전어회를 접시에 납작하게 꾹꾹 눌러 담는다. 무침도 구이도 없고 오로지 회다. 물론 회는 뼈를 발라내고 살만 썬 일반 회와 뼈회 두 가지가 있기는 하다. 모양 내지 않고 투박하지만 실속 있는 스타일이다. 어디가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주어진 환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적의 방식들이다.

 

 

전어, 어디 까지 먹어 봤니

부산 명지시장

부산 명지시장 ‘산수갑산’ 전어뼈회(세꼬시)

낙동강 하구 부산 서쪽 끝에 있는 명지시장은 전어축제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개최한 곳 중 하나다. 명지시장 전어축제위원장 성선기씨는 "8월 초부터 전어를 팔기 시작해 11월 말까지 낼 것"이라며 "가덕도 부근에서 잡은 전어가 대부분이고 통영 쪽에서도 들여온다"고 말했다. 회와 구이 2가지를 주로 낸다. 회무침을 파는 식당은 별로 없다. 회는 뼈를 발라내고 살 안 떠낸 일반적인 회와 뼈회 2가지가 있다.

명지 전어를 맛보기 위해 성씨에게 소개받아 '산수갑산'(051-271-0240)을 찾았다. 이 식당 사장 하기석(54)씨는 "이 시장 웬만한 식당은 경력 30년이 넘어 칼솜씨가 좋다"며 전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듬었다. 전어 여러 마리가 찬물에 담겨 있다. 피를 빼기 위함이다. 이 중 한 마리를 도마에 놓고 잘 벼린 칼로 대가리를 따낸다. 이어 배 맨아래 끄트머리를 잘라낸다. 이 지역에서 '뱃봉'이라고 부르는 부위다. 하씨는 "뼈가 많고 뻐세서(억세서) 먹기 힘든 부위"라며 "쪼사서(다져서) 막장에 버무려 먹는 부산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고 말했다.

대가리와 내장, 뱃봉을 제거한 전어 몸통을 거즈 사이에 넣고 꼭 눌러 물기를 제거한 뒤 반으로 갈라 뼈를 떠내고 세로로 길게 썰면 일반적인 회가 된다. 뼈회는 뼈가 그대로 든 몸통을 사선으로 썬다. 단면이 ㅅ자 또는 화살촉 모양이다. 하씨는 "그냥 뼈회와 '돈대로' 뼈회 2가지 방식이 있다"며 다시 뼈회를 썰기 시작한다. '돈대로' 뼈회는 사선으로 썰되 전어와 칼날의 각도가 작고, 두툼하게 썬다. 하씨가 이렇게 썬 뼈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동그랗고 가운데가 뚫린 게 엽전 같다.

시세에 따라 달라지나 식당에선 접시당 4만·5만·6만원, 시장 생선가게에선 1㎏에 2만2000~2만3000원쯤 한다. 하씨는 "전어회는 젓가락으로 한 움큼 집어서 막장에 팍 찍어가 야채 없이 입안 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어 먹어야 제맛"이라고 알려준다.

사천

사천 대포 '미룡자연산횟집' 전어구이

사천대교를 건너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달리다 보면 대포라는 한적한 포구가 나타난다. 삼천포어시장 상인들의 "사천 앞바다에서 잡히는 진짜 사천산 전어만 파는 식당들이 있다"는 소개로 찾아갔다. 횟집이 대여섯 모여있고, 이 중 조금 떨어진 '미룡자연산횟집'(055-835-2411)으로 들어갔다.

"여기선 전어를 어떻게 먹느냐"고 물으니, 식당 주인 서연갑씨는 "원하는 대로 잘라준다"고 했다. 다시 "원하는 대로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세꼬시(뼈회)도 있고, 그냥 회도 있고, '통마리'도 있고…"라고 했다. 그래서 "이곳 분들이 드시는 스타일 다 달라"고 했다. 무려 4가지 전어회가 나왔다.

우선 일반적인 회. 뼈를 떠내고 길게 잘랐다. 이어 흔히 볼 수 있는 뼈회. 그 옆으로 도저히 회라고 볼 수 없는, 칼 대지 않은 전어 몸통이 통째로 접시에 올라 있었다. 서씨는 "그게 통마리"라고 했다. 대가리와 내장, 꼬리만 제거한 전어 몸통이었다. "사천 어부들이 배에서 전어를 먹는 스타일입니다. 씹는 맛 좋아하는 분들이 더러 그리 달라 해요."

참…. 뭐라 말하기 힘든 강렬한 인상의 전어회였다. 손으로 통마리를 집어서 막장을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로 전어 몸통을 깨물어 잘라내야 했다. "우득우득" 잔뼈 부러지는 소리와 질깃하게 늘어나는 껍데기가 묘한 식감(食感)을 만들어냈다. 웬만큼 엽기적인 음식도 잘 먹는 편이나, 이건 두 입 이상 먹기가 버거웠다. 통마리 옆에 세꼬시 한 점을 집었더니, 세 점이 한꺼번에 딸려 올라왔다. 세꼬시가 덜 잘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통마리를 서너 토막으로 자르고 칼집을 넣은 겁니다. 일반 세꼬시보다 더 씹는 맛을 즐기고 싶은 분들이 이걸 먹지요."

전어구이가 환상적이다. 너무 크지 않은 전어를 골라 노릇하게 구웠다. 껍질은 얇고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프랑스 최고의 파티시에(patissier)가 구운 크루아상 같다. 대가리째 씹어도 뼈가 억세지 않고, 내장은 쌉쌀하면서 동시에 고소하다. 회건 구이건 접시당 3만·4만·5만원 받는다. 다른 곳에선 그 자체만으로 고급 메뉴인 새조개가 반찬으로 나온다. 2~3년 전부터 이곳 앞바다에서 겨울에 많이 난다고 한다.

광양 망덕포구

지역따라 전어에 따라 회 써는 두께도 다르다.

전남 광양 망덕포구에 있는 '바다횟집'(061-772-1717)에서 전어회를 먹으니 마치 간을 하기라도 한듯 희미한 짠맛이 났다. 이 짠맛이 전어가 가진 감칠맛과 고소한 맛을 한층 깊고 진하게 했다.
주인 김상철(56)씨에게 물으니 "회에 무슨 간을 하느냐"며 "지하수로 씻기만 해서 내놓는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가 "바닷가라서 짠물이 섞인 지하수라 그럴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하수를 맛봤다. 확실히 짰다. 그는 "민물에 씻으면 고기가 비리다"면서 "이 지하수로 씻어서 망덕 전어가 비리지 않고 맛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 것 같기도 했다.

김씨는 "하동 철교 밑 섬진강 하구에서 잡은 전어를 쓴다"고 했다. "7월 20일쯤부터 나왔고 9월 중순 가장 기름이 올랐다가 10월 말, 11월 초까지 나올 것 같아요." "따닥발이"로 잡는다고도 했다. 따닥발이란 커다란 그물로 잡아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배에서 작은 그물로 잡은 다음 하나씩 손으로 떼어낸 전어라는 뜻이다. 비늘이며 몸 상태가 더 온전하고 신선한 데다 스트레스를 덜 받아 맛이 더 좋다는 게 이곳 사람들 말이다.

여기 전어는 전남 보성 율포와 경남 사천 대포 전어의 중간쯤 되는 맛이다. 전라도와 경상도 중간에 놓인 광양의 지리적 조건과 일치한다. 육질의 단단함도, 감칠맛도, 기름진 정도도 중간쯤이다. 먹는 이에 따라선 가장 이상적으로 균형 잡힌 맛의 전어라고 할 수도 있을 듯싶다. 그래서 전어회를 썬 두께도 보성과 사천 중간쯤이다.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 사이에서는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뒤섞여 오고간다.

전어회·구이·무침이 각각 4만원이다. 3가지 모두 나오는 '전어 풀코스'는 6만·7만·8만원짜리가 있다. 망덕포구는 백합조개도 살이 야무지고 감칠맛이 진하기로 이름 높으니 함께 맛보아도 좋겠다. 1㎏에 4만원이다.

보성 율포

보성 율포 '해돋이횟집' 전어회무침

전남 보성IC를 통과해 봉화산을 넘어 차밭 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갯길을 넘어 율포로 가는 길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부드러운 차산(茶山)에 둘러싸인 포근한 바다에서 자라는 전어는 기름지고 부드러웠다. 그래서인지 율포 '해돋이횟집'에서 맛본 전어회는 이전까지 맛본 부산·진해·삼천포·광양의 전어보다 두툼하게 썰려 나왔다. 더 두툼하게 썰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즐기면서 씹는 맛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라도에서는 거의 모든 음식에 참깨와 참기름이 뿌려져 나오는데, 여기 전어회도 마찬가지였다. 갓 볶아 신선한 참깨가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면서 전어회에 고소함을 더했다. 하지만 참깨의 강한 맛과 향이 전어를 가린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어회를 접시 가운데 봉긋하게 담아 눈으로 보기에 더욱 먹음직스러우면서 양이 많아 보이게 한 점도 경상도와는 달랐다.

초고추장과 각종 채소를 넣어 버무린 전어회무침을 먹어보니, 역시 전라도였다. 맵고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절묘하게 서로 균형을 잡으며 전어가 가진 고소함을 극대치로 끌어올린다. 대접에 따뜻한 밥 한 덩어리를 넣고 회무침과 비벼 먹으니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인 데다 배까지 부르다. 매운 입을 달래려 물병에 담긴 물을 따라 마셔 보니 녹찻물이다. 녹차의 고장답다.

구이는 기름이 잘 오른 큰 전어를 사용했다. 살이 많고 부드러워 먹을 만했으나, 뼈가 억세서 대가리부터 통째로 씹어 먹을 수는 없고 살을 발라 먹어야 했다. 식당 종업원은 "(율포 앞) 득량만에서 잡은 2~3년짜리 큰 전어를 주로 쓴다"고 했다. 전어는 전체적으로 흰색에 가까운 은빛에 등에는 까만 점들이 줄지어 박혀 있다. 푸른빛이 전혀 돌지 않아서 경남의 전어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전어회·무침·구이가 각각 3만·4만·5만원이다. 3가지 다 맛보는 '전어코스'는 10만·12만원짜리가 있다.

진해

동전 모양으로 썬 창원 진해 '김해식당' 전어뼈회

진해는 '떡전어'를 지역 특산품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떡전어란 보통 몸길이 20㎝ 이상 되는 큼직한 전어를 말한다. 종류가 다르거나 진해에서 나는 전어로 한정되는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진해 앞바다에서 워낙 큰 전어가 많이 잡히다 보니 '진해 떡전어'로 오래전부터 이름이 났다.

진해 용원동 어시장 안팎으로 횟집이 여럿 있다. 이 중 '김해식당'(055-552-2123)은 유명 정치·기업인의 사인이 담긴 액자가 줄 맞춰 걸린 횟집이다. 이 집 사장 안종택씨는 "진해만에서 잡히는 전어는 회를 떠보면 물기가 없이 꼬들꼬들 육질이 차지고 단맛이 난다"며 "다른 곳보다 짠물(바닷물)이 많이 들어가 그렇다"고 했다.

진해에서는 7월 말부터 전어가 나기 시작해 9월에 전성기를 맞았다가 10월 말까지 어시장의 '스타'로 활동하다가, 11월 감성돔, 이어 겨울이 되면 대구에게 주인공 자리를 넘긴다.

이곳 전어는 부산 명지시장에서 본 것처럼 등이 푸른빛이나, 노르스름한 빛깔이 조금 섞였다는 게 좀 달랐다. 일반 회와 뼈회, 동그랗게 동전 모양으로 썬 '돈대로' 뼈회 3가지 방식으로 상에 올랐다. 진해 사람들은 9월 초까지는 전어를 주로 회로 즐기다가 중순쯤 기름이 오르면 구이로 먹는다. 살에 붉은빛이 진하게 돈다.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옆으로 통통한 것이 살이 튼실하다. 씹으니 단단하다. 기름지다기보다 생선살 자체의 감칠맛이 강하다.

전어를 이 식당에서는 접시 단위로 파는데 크기별로 5만·8만·10만원짜리가 있다. 접시가 그리 크지 않다 싶은데 먹다 보면 보기보다 양이 많다. 모양내지 않고 꾹꾹 눌러 담는 게 경상도답달까. 밥이 1공기 2000원으로 좀 비싸다 싶었는데, 제대로 끓인 생선 매운탕뿐 아니라 꽃게 된장국까지 딸려 나오는 걸 보고 바가지는 아니구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