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289

[애송시 100편-제42편] 황지우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

[애송시 100편-제41편] 박상순 -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의 내가 열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애송시 100편-제39편] 이용악 - 전라도 가시내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

[애송시 100편-제37편] 고은-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

[애송시 100편-제36편] 임화-우리 오빠와 화로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