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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지말고 집 조립하세요

bthong 2015. 6. 28. 07:13

 

이달 20일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인근 대로변. 파란색 컨테이너로 지은 대형 조립식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 건물은 가로 12m, 세로 2.3m, 높이 2.4m 크기의 40피트 컨테이너 200개를 사용해 4층(연면적 5280㎡)으로 만든 국내 최초의 조립식 컨테이너 쇼핑몰 '커먼그라운드'이다. 건물 내부에는 강렬한 비트의 전자 음악이 흘러나왔고 젊은 연인이나 자녀와 함께 나들이 삼아 나온 가족도 많았다.

이 건물은 택시 차고지였던 땅을 8년간 빌려 지은 것으로 작년 10월 착공해 6개월 만인 올 4월 오픈했다. 8년 후에는 돌려줘야 하는 땅이다 보니 빨리 짓고, 철거 후에도 재활용이 가능한 조립식 컨테이너를 이용했다. 커먼그라운드 관계자는 "건축비도 일반 콘크리트 건물로 지을 때보다 20% 정도 적게 들었다"고 말했다.

2003년 서울 신기초등학교 증축 공사로 국내에 처음 선보인 조립식 건축물이 10여년 만에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짧은 공기(工期)와 저렴한 비용 등을 내세워 시장 규모가 연 3000억원대로 커졌다. 정부와 지자체가 행복주택 등 공공 건축에 잇따라 조립식 건물을 도입하고 있고, 대기업도 앞다퉈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조립식 주택은 미래형 건물"

조립식 건물은 컨테이너와 모듈러 주택으로 나눌 수 있다. 골조·전기 배선 등 집의 70~80%를 공장에서 미리 만들고 건물이 들어설 터에 이를 통째로 옮겨 '레고 블록'을 맞추듯 조립하는 '모듈러(modular) 주택'은 군 병영생활관, 학교·기숙사 등을 짓는 데 이용돼 왔다. 컨테이너 건물은 소형 상업·문화 공간에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짧은 공사 기간, 공사 효율성, 친환경성 등 장점을 가진 조립식 주택이 미래형 건축물로 각광을 받으면서 용도가 확대되고 있다. 아주대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국내 조립식 모듈러 건축 시장 규모가 올해 3000억원, 2020년엔 1조7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5층짜리 건물을 철근 콘크리트로 지으면 6개월 정도 걸리지만 모듈러 공법은 30~40일에 공사를 마칠 수 있다"며 "콘크리트 건물보다 이색적인 분위기는 덤"이라고 했다.

건물 철거 후 폐기물을 재활용할 수 있고 철거했다가 장소를 옮겨 다시 같은 건물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미리 공장에서 모듈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도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중견 모듈러 건축 업체인 금강공업이 작년 5월 남극에 준공한 장보고 과학기지는 모듈 186개를 사용해 만든 조립식 건물이다.

대기업도 시장 진출 '러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조립식 건물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올 11월까지 지하철 1·4호선 창동역 환승주차장에 40피트짜리 컨테이너 박스 51개로 '드림박스'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 드림박스에는 창업지원센터·전시장·공연장 등이 들어간다.

국토교통부는 다음 달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조립식 공법으로 지은'모듈러 행복주택 1호' 44가구를 사회 초년생에게 공급할 계획이다.

9월에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도 모듈러 행복주택 30가구를 짓는다. 서정호 국토부 주택건설공급과장은 "그동안 상업시설, 기숙사, 펜션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했던 조립식 주택이 실질 거주 목적으로도 적합한지 실증하는 단계"라고 했다.

대형 건설사들도 조립식 주택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제일모직은 지난해 모듈러사업 전담팀을 신설하고 관련 특허 20여 건을 확보했다. 현대엔지니어링도 모듈러 주택 기술을 확보하고 지상 2층(6가구) 규모의 실험주택을 만들어 테스트했다. 대림산업도 지난달 국토부의 '중고층 모듈러 사업 연구단'에 참여했다.

"공사비 아직은 비싸"

조립식 건물은 단점도 있다. 소음이나 진동,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 다만 최근 기술 발달로 이 부분도 많이 개선됐다. 유일한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기술력으로는 15층 이상 중고층도 모듈러 주택으로 지을 수 있고 단열이나 방음도 아파트 못지않다"며 "다만 유럽이나 중국과 달리 우리는 이를 낙후한 주거 형태로 인식해 도입에 소극적인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직 국내 시장 규모가 작아 대량생산이 어렵고, 그 때문에 생산 원가가 비싸다. 현재 모듈러 주택 공사비는 철근콘크리트 구조 주택 공사비의 130% 수준이다. 임석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량생산 설비가 갖춰지면 공사비는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70~80%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공장에서 건물을 찍어내는 모듈러 건물 시장이 확대되면 현장 중심의 건설업이 공장 중심의 제조업으로 변해 완제품을 수출하듯 집을 수출하는 일도 가능해진다"고 했다.